무태 마을의 해 질 녘 하늘은 언제나 붉었다. 바람결에 논두렁의 푸른 내음과 장독대의 짠 냄새가 뒤섞여 코끝을 간지럽히면, 여덟 살 윤희는 신발을 벗어 던지고 곧장 마당을 가로질렀다.
"할머니! 나 다녀왔어요!"
마당 한가운데, 해묵은 감나무 아래서 홀치기를 잣고 계시던 엄마와 할머니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우리 윤희 왔구나. 학교는 어땠어?"
"응! 선생님이 내 글씨 예쁘다고 칭찬하셨어!"
엄마는 윤희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다시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윤희는 재빨리 눈치를 살핀 뒤, 마루 한쪽 장독대 앞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커다란 옹기 속, 빨간 고추장.
뚜껑을 살짝 열자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내음이 훅 끼쳤다. 윤희는 손가락을 조심스레 집어넣어 고추장을 살짝 떠냈다. 햇빛에 반짝이는 빨간 고추장을 혀끝에 대는 순간, 짠맛과 단맛이 어우러지며 입안 가득 퍼졌다.
"아이고, 또 고추장 퍼먹는구나!"
홀치기틀을 할머니께 맡기고 부엌에서 밥상을 차리던 어머니가 혀를 찼다. 하지만 정작 호된 꾸중은 없었다. 윤희가 매일같이 조금씩 퍼먹는다는 걸 알면서도, 어머니와 할머니는 장독대의 고추장을 줄이지 않고 가득가득 채워두곤 했다.
아버지와 일곱 명의 오빠, 언니들이 하나둘씩 논일과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대청마루는 금세 북적였다. 저녁밥상 위엔 갓 담근 김치와 따끈한 보리밥, 그리고 윤희가 몰래 맛본 그 고추장이 올라왔다.
"윤희야, 오늘도 고추장 맛 좀 봤지? 고추장에서 어째 고기 맛이 난다." 오빠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아니야!" 윤희는 혀를 쏙 내밀며 손을 저었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입술에는 빨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가족들은 깔깔 웃었고, 윤희도 따라 웃었다.
이렇게 무태의 밤은 가족들의 웃음 속에 깊어갔다. 논과 밭, 그리고 장독대가 품은 따스한 정(情)이 윤희의 하루를 감싸주었다. 그리고 그 정은, 장독 속 빨간 고추장처럼 깊고도 진하게 그녀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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